안녕하세요.
정건축사입니다!
10월 처음으로 시작한 대구 도시 STUDY모임에 총 8명이 참석해 주셔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중에는 도시, 건축을 전공하신 분 외에도 경영, 정책, 지질 등을 전공하신 분들도 와주셔서 앞으로가 더 기대 되는 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대구 도시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 때는 아무도 오시지 않을 것 같아 '인원이 적더라도 재미있게 도시에 대해 공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10월 대구 도시 STUDY모임에서 발표했던 '도시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글로 써보려고 합니다. 도시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저는 건축 공간이 중요한 것처럼 도시 공간 역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진1은 1800년대 프랑스 파리(Paris) 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 도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파리에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많았으며,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거리는 오물과 악취로 가득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도시환경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콜레라 같은 각종 전염병을 발생시켜 생명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1852년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남작을 파리시장으로 임명하여 열악한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사진2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길은 오스만 남작의 파리 도시계획 당시에 새롭게 만들어진 길입니다. 새로 생긴 도로 덕분에 빛과 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하였고, 지하에는 상하수도, 가스관 같은 시설을 매설하여 생활 환경을 개선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파리 시민들의 삶은 과거에 비해 더 좋아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좋아진 도시환경에서 살기 위해 프랑스 파리 외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지식인, 예술가들도 파리로 모여들어 프랑스 파리가 유럽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남작의 파리 도시계획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민들의 반란을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망을 방사형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파리의 지도를 보면 개선문(사진3)이 있는 '샤를 드 골 광장' 뿐만 아니라 '미헤샬 쥬앙 광장' 등 많은 광장이 방사형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사진2의 오스만 파리 도시계획에서도 새로운 도로를 방사형으로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사형의 대표적인 예는 제러미 벤담의 설계한 '판옵티콘'(사진4) 입니다. 이 판옵티콘은 최소한의 교도관으로 다수의 죄수를 감시하기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감옥의 가운데는 감시탑을 두고, 죄수들이 지내는 감옥은 둥글게 펼쳐 있습니다. 여기서 감시탑은 어둡게, 감옥은 밝게 만들어버리면, 교도관은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교도관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스스로 계속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스만 남작을 임명한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하기 전 1789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었습니다. 대혁명 당시 시민들은 왕을 끌어내리고 공화정을 수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1793년에는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 3세 역시 자칫 잘 못하다가는 본인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입니다. 따라서 파리 도시를 방사형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봉기를 효과적으로 제압, 차단하고자 하였습니다.
파리의 도시환경은 일부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유럽 대도시의 주거환경은 좋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결핵과 같은 질병들이 유행하였고 산업화, 도시화 등과 맞물려 도시에 사는 노동자들의 생활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당시 이 같은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명의 도시계획가 서로 다른 계획안을 제시했는데, 이 두 가지 계획안을 각각 살펴보고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도시계획가는 에버니저 하워드입니다. 하워드는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는 대도시를 벗어나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였습니다. 주거, 농지, 녹지, 공장 등 반독립적 기능을 갖춘 자립적인 전원도시를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일은 대도시에서 하고 잠만 교외에서 자는 전원교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하워드는 실제로 런던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떨어진 곳에 엘원 가든시티를 조성하였습니다. 사진6의 도시 가운데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은 주거지, 핑크색은 공업지역, 이외에도 공공시설, 학교 등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구글 지도에 Welwyn Garden City(웰륀 가든시티)를 검색하면 런던 북쪽에 위치한 도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사진6과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두 번째 도시계획가는 르 꼬르뷔제입니다. 르 꼬르뷔제는 하워드와 달리 병든 도시를 버리고, 교외로 나갈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도시환경을 개선시켜야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연히 힘이 덜 드는 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근교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진7은 프랑스 파리를 대상으로 만든 도시 계획안입니다. 우측 하단에 있는 섬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입니다.
르 꼬르뷔지에는 프랑스 파리에 높은 건폐율을 가진 건물을 전부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기존 파리에서 70~80% 건폐율을 가진 5~6층 건물을, 고층으로 만들어 건폐율을 5%로 줄이고 나머지 공간을 도로, 주차장, 공원 등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빽빽했던 중저층 건물의 허물고 새로운 건물의 층수를 높게 올려 열린공간을 더 많이 제공하자는 계획안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로수가 기존에 비해 4배가 되고, 인구밀도 역시 4배가 될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사람들은 사진8 처럼 도시 속 녹지공간에서 자연을 즐기고 빛을 온전하게 받으며, 신선한 공기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르 꼬르뷔지에는 도시의 심장부는 자동차 매연으로 오염된 좁은 길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도시의 심장부를 해결하지 않고 교외로 이동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추가적으로 르 꼬르뷔지에는 도시의 성공은 속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고, 고층 건축물 덕분에 작업이 집중되고 작업 속도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견 교환이 빠르게 일어남에 따라 거래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00년대 열악한 도시 환경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명의 도시계획가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교외로 나가자고 하였고, 다른 한 명은 도심 속을 재개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당시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워드의 계획안인가요? 혹은 르 꼬르뷔지에의 계획안인가요? 이 처럼 도시계획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선택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민이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가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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