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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생각

건축가를 꿈꾸게 된 이유

by tophoon 2025. 10. 27.

 
 건축을 처음 꿈꾸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도시와 건축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제가 어떤 도시환경 속에서 자라왔는지 잠시 돌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대구 외곽에 위치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파트 단지들의 세대수를 모두 더하면 10,000세대가 넘었고, 단독주택은 전혀 없는 철저히 계획된 신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집도 모두 아파트였으며, 저 역시 사실상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만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던 제게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이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지어 이사 가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제가 “집 내부에 계단이 있는 복층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은 집을 지을 땅을 찾아다니셨고 그렇게 선택한 곳은 또 다른 신도시의 단독주택 필지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건축이라는 세계와 처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도면을 그려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우리집은 이렇게 지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건축 관련 책을 찾아본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찾은 건축 책은 안토니 가우디의 위인전이었는데, 곡선을 사용한 그의 건축은 단번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도시를 둘러보면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지만, 모두 네모난 모습뿐이었습니다. ‘왜 우리 주변은 다 네모난 건물일까?, 가우디처럼 곡선으로 지을 수는 없는 걸까?’하는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집 (거실)

 
 부모님은 집을 짓기 위해 서울, 대구 할 것 없이 전국의 건축박람회를 찾아다니셨는데, 저도 함께 따라다니며 건축을 조금씩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착공에 들어갔을 때는 주말마다 현장을 방문해 집이 지어지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부모님은 '북미식 경량 목구조'로 집을 지으셨습니다. 지금 이 집을 건축적으로 평가한다면 ‘지역의 맥락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북미 주거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올바른가?’라는 등의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고 공간이었습니다. 2층과 3층이 보이드(void) 공간으로 연결된 구조, 집 안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낄 수 있는 공간의 변화는 제게 큰 행복을 주었고, 그때부터 건축사가 되겠다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의·식·주 중 하나인 ‘주(住)’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인데 설마 사라지겠어?‘라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공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건축이 아닌 다른 직업을 꿈꿔본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학과에 진학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콜로니아 구엘 성당(안토니 가우디)

 
 대학교에서 1학년 2학기를 수강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찾았습니다.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카사밀라, 카사바트요, 성가족대성당,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몬세라트까지. 그곳에서 본 건물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때 ‘나도 이런 건축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인 건축 수업에 들어서자 저를 맞닥뜨린 건 '가우디'가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였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잘 와닿지 않았지만, 공부를 거듭할수록 저는 오히려 그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저에게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르 코르뷔지에’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의 건축은 진심으로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양식이 여전히 주류이던 시대에 그는 과감히 새로운 길을 걸었고, 수 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사람을 위한 건축’을 고민했습니다. 지금 시대의 잣대로 르 코르뷔지에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당시 그 시대에 필요한 대담한 발상 자체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졸업 설계 주제 역시 ‘인간을 위한 도시(City for the People)’이었습니다. 이름처럼, 건축과 도시가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담은 작업이었습니다.
 

빌라 사보아(르 코르뷔지에)

 
 그 후 건설사에 취업하고 맞은 첫 여름휴가, 일주일 남짓이었지만 저는 고민 없이 프랑스 파리로 향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된 제 유년의 공간 경험과 부모님의 집 짓기, 가우디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한 동경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저는 '사람을 위한 건축, 도시'이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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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름 변경 (정사원의 건축이야기 → 정건축사의 건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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