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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생각

전이공간 transfer space

by tophoon 2019. 11. 10.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수능 한파를 대비하라는 소식이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옷장에 외투를 꺼내 입을 준비를 하고 나무는 줄기에서 잎으로 가는 물을 차단해 초록색 잎을 노란색, 빨간색 단풍으로 물들이며 겨울준비를 합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사계절이 존재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각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름과 겨울 사이에 봄과 가을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월요일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외출했는데 화요일은 갑자기 겨울 외투를 입어야 한다면, 그 날 아침 정신없이 겨울 외투를 옷장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힘겹게 살아간다고 해도 나무와 같은 자연의 동식물들이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요? 

 

 사계절에는 봄과 가을이 있어 여름과 겨울로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게 변화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건축 공간에도 봄, 가을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건축에서는 이 공간을 '전이공간(transfer space)'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공간이 바뀌게 되는데, 이때 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완충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진1 CGV 티켓박스
사진2 CGV 티켓박스

 

 일상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전이 공간이 바로 영화관의 티켓박스입니다. 영화관의 티켓박스는 대부분 어둡게 조성이 되어있습니다. 이 공간은 야외의 밝은 빛에 노출된 환경에 있다 온 사람들이 어둠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밤에 자기 전 전등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불을 켜면 불쾌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밝은 빛을 보다가 갑자기 어두운 영화 상영관으로 들어가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관에서는 티켓박스와 같은 공간을 어둡게 만들어 사람들이 어둠과 밝음에 적응할 수 있는 전이 공간을 만들어 놓습니다.  

 

사진3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사진4 싱가포르 ION 오차드

 또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이 공간은 건물의 로비(lobby) 부분입니다. 큰 건물일수록 로비가 위치한 공간은 사진 3,4와 같이 천정고가 높습니다. 이런 공간을 건축에서는 아트리움(atrium)이라고도 합니다.

 

사진5

 건물에 들어오기 전 사람들이 걷는 공간의 머리 위로는 하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무한히 높은 천정 고를 가진 공간에 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닿을 듯한 낮은 천정고를 가진 공간(사진5의 A)에 들어오게 되면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군다나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공간이 넓은데 천정고가 갑자기 낮아지면 답답함은 두배가 됩니다.

 건축 공간에서는 무한히 높은 천정고에서 낮은 천정고로 적응할 수 있도록 아트리움과 같은 전이공간(사진5의 B)을 만들어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사진6 출처 :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돌
사진7 출처 :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돌
사진8 출처 :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돌
사진9 출처 :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돌
사진10 출처 :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돌

 전이 공간은 영화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가 처음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날 런던의 9와 4분의 3 정류장의 벽돌로 된 기둥을 통과해 기차 정류장으로 가게 됩니다. 이 기차는 출발해서 숲도 지나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처럼 이름 모를 호수도 지나 어두운 밤에 호그와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해그리드와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지날 때쯤이 돼서야 안갯속 바위 위에 위치한 호그와트가 보입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 도착하기까지의 일련의 공간들 역시 마법학교로 가기 위한 전이 공간입니다. 만약 해리포터가 주문을 외워 한번에 호그와트에 도착한다면 지금과 같은 호그와트의 신비함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동안 다양한 공간(전이공간)을 거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신비한 존재이며, 아무나 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11
사진12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이 공간은 꼭 필요한 것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길거리 상점들을 보면 전이 공간을 의도적으로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점 문을 항상 열어놓거나 심지어는 팔려는 상품을 그냥 길거리에 내놓기도 합니다. 이런 상점들이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구매 및 방문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쉽고 가까이 접근해 상품을 구경하게 만들고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진입이 쉽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전이 공간은 오히려 불필요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이 닫혀있는 가게와 문이 열려있는 가게가 있다고 상상해보면, 우리는 분명 문이 열려있는 가게를 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구매의사와 목적이 없더라도 단순히 진열된 상품을 구경하는데 심리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문이 닫혀있는 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왠지 자신도 모르게 사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게 됩니다. 

 

사진13

 반대로 사진13과 같은 카페는 거리와 카페 내부 사이에 최소한의 전이 공간을 만들고 식물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카페 내부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도 있습니다. 

 

사진14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주거공간에 존재하는 전이 공간입니다. 사진14의 오른쪽 집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외부 도로로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전이 공간이 전혀 없는 집입니다. 문을 열었을 때 비를 막아줄 캐노피(canopy)도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현관문을 열쇠로 열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이런 경우 도로에 지나가는 사람이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집 내부가 훤히 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주택의 경우에는 대문을 지나 마당을 거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게 되고, 아파트의 사는 경우 단지 문주와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층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자신의 집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주거의 전이공간(transfer space)는 어떤가요? 집 내부에 인테리어에 관심 갖는 것도 좋지만 도로에서부터 현관문을 열기까지의 공간을 생각해보면서 집 외부의 전이 공간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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